▲ 내종석 파주신문 발행인
정치가 얽히고설켜 어려울수록 오래된 고전의 문장은 오히려 선명한 빛을 발한다.
‘태평함은 공정함에서 나온다’는 뜻의 평득어공(平得於公). 《여씨춘추(呂氏春秋)》 귀공(貴公)편은 공정하면 천하가 평안해지고, 천하를 얻는 것도 공정에서 비롯되지만 잃는 것은 치우침 때문이라고 가르친다. 순자 역시 공평함을 정치를 다스리는 저울에 비유했다. 정치의 기본은 결코 복잡하지 않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목소리를 경청하여, 이를 시민이 체감할 수 있는 결과물로 빚어내는 것이다.
이 오래된 가르침은 취임 100일을 넘긴 손배찬 파주시정에도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손 시장은 민선 9기의 3대 시정 원칙으로 ‘경청과 협치’, ‘공정과 신뢰’, ‘실용과 성과’를 내걸며, “시민의 일상에서 ‘달라졌다’고 느껴야 진짜 변화”라고 역설했다.
방향은 훌륭하다. 그러나 선언은 이제 충분하다. 항간에 “말이 많으면 자손이 귀하다”는 우스갯소리가 정치판에서 묘하게 설득력을 얻는 이유는, 말이 앞설수록 정작 성과가 빈약해지는 정치를 숱하게 목격해 왔기 때문이다. 민선 9기 파주시정마저 그 전철을 밟아선 안 된다. 시민이 원하는 것은 장황한 설명이 아니라 행정의 속도이며, 화려한 수사가 아니라 삶의 실질적인 변화다.
여기서 중앙정치의 흐름을 잠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오랜 기간 내세운 정치 철학의 요체는 강자를 누르고 약자를 돕는 ‘억강부약(抑强扶弱)’과 모두가 어우러져 사는 ‘대동세상(大同世上)’이다. 그러나 아무리 숭고한 목표라도 내부 갈등과 편 가르기가 정국을 덮으면 국민의 눈엔 그 철학이 흐릿해지기 마련이다. 최근 여권 내부에서조차 전당대회 이후 불거진 계파 갈등과 분열을 지지율 하락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하며 자성의 목소리를 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파주가 여기서 얻어야 할 교훈은 명확하다. 정치는 원대한 목표를 잃고 진영 논리에 매몰되는 순간부터 초라해진다. 손배찬 시정은 이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 과거 경선 과정에서의 지지 여부나 내 편, 네 편을 따지는 좁은 정치가 ‘경청과 협치’, ‘공정과 신뢰’를 밀어낸다면, 민선 9기의 원대한 비전 역시 길을 잃고 말 것이다.
지금 파주시에 가장 필요한 것은 심기일전(心機一轉)이다. 다행히 손 시장에게는 이를 실행할 든든한 조직이 있다. 민선 9기는 출범 직후 정무실장·비서실장·정무비서관에 이어 정책자문관·자치협력관·대외협력관 등 전문임기제 3명을 추가 임용했다. 공개된 핵심 정무·정책 보좌진만 6명으로, 전임 시정 대비 두 배 가까이 두터워진 매머드급 진용이다.
참모진이 두터워졌다면, 시민의 목소리가 시장실로 전달되는 속도 역시 두 배 빨라져야 마땅하다. 민원이 책상 서랍에서 잠들게 해선 안 되며, 공직사회가 “어렵다”며 멈춰 세운 현안의 틈새를 정무라인이 파고들어 다시 살려내야 한다. 반대편에 섰던 사람이라도 옳은 이야기를 한다면 기꺼이 시장에게 전달해야 한다.
무엇보다 훌륭한 참모는 시장을 편안하게 모시는 사람이 아니다. “시장님, 현장의 민심은 다릅니다”, “우리 편의 주장이라도 이것은 잘못됐습니다”, “반대편의 논리라도 받아들일 건 받아들여야 합니다”라고 직언할 수 있어야 진짜 참모다. 듣기 좋은 말만 앵무새처럼 옮긴다면, 정무라인은 소통의 다리가 아닌 민심을 차단하는 두터운 장막으로 전락하고 만다.
파주의 굵직한 현안들은 결코 한가롭게 기다려주지 않는다. 지하철 3호선 연장, GTX-A 연계 교통망, 운정테크노밸리, 파주메디컬클러스터, 평화경제특구 지정 등은 모두 중앙정부, 경기도, 국회와의 긴밀한 협상과 정무적 돌파력이 필수적인 과제들이다. 두터운 보좌 조직을 갖추고도 현안이 부서 간에 표류하고 대외적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시민들은 당연히 “그 많은 참모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고 따져 물을 수밖에 없다.
정무·정책 보좌진의 급여는 오롯이 시민의 혈세에서 나온다. 이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여 국·도비를 끌어오고 해묵은 갈등을 풀어낸다면 그 비용은 훌륭한 투자가 된다. 그러나 사람만 늘고 행정의 속도는 제자리걸음이라면, ‘시민을 위한 조직인가, 시장을 위한 비서인가’를 넘어 ‘세금 낭비 비서조직’이라는 엄중한 정치적 책임론에 직면할 것이다. 이는 단순한 비판이 아니라, 스스로 성과를 통해 존재 이유를 증명하라는 매서운 경고다.
이 모든 국면의 최종 책임자는 결국 손배찬 시장이다. 커진 정무라인을 시민을 향한 안테나로 삼아 적극 활용한다면, 손 시장은 갈등을 넘어 지역과 여야를 아우르고 중앙을 움직이는 ‘큰 정치’를 실현할 수 있다.
100일은 탐색과 준비의 시간이었다 치자. 하지만 200일, 300일이 지나서도 준비만 이야기할 수는 없다. 이제 시민의 질문은 한결같이 간결하고 날카롭다.
“무엇이 달라졌는가, 무엇이 빨라졌는가, 무엇을 해결했는가.”
‘평득어공(平得於公)’. 평안은 공정에서 나온다. 그리고 오늘의 파주에는 이 한마디가 반드시 추가되어야 한다.
공정은 경청에서 시작되고, 경청은 소통으로 이어지며, 소통의 진정성은 결국 ‘속도와 성과’로 증명된다.
두터워진 정무라인이 손배찬 시장의 도약을 돕는 든든한 날개가 될 것인가, 혈세만 축내는 비서조직으로 남을 것인가. 그 해답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늘어난 참모의 ‘숫자’가 아니라, 앞으로 그들이 쏟아낼 ‘속도와 성과’가 모든 것을 증명할 것이다.